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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뮤지컬 영화 영웅 리뷰, 솔직후기
    카테고리 없음 2023. 2. 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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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영화 <영웅> 스틸 이미지, 스틸컷

    1. 영화 <영웅> 줄거리 

    영화 '영웅'은 대한제국 말기에 활약한 계몽운동가이자 군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이다. 뮤지컬 영화로 개봉해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안중근은 어머니 조마리아와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둔 채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이 자작나무숲에 모여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국의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이내에 처단할 것을 맹세하며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결심 후 피로 태극기를 그리며 맹세한다. 어느 날 일본군과 조선군이 대립 후 일본군이 포로로 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안중근은 전쟁 중 잡힌 포로는 이렇게 죽이면 안 된다고 하여 풀어주게 된다. 일본군은 역시나 앞에서는 감사하다고 하고 다시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평화롭게 저녁을 보내던 중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오고 포탄이 터진다. 일본군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탓에 무방비 상태로 침략을 당하게 되며 안중근도 총에 맞고 쓰러지며 장면이 전환된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하기 위해 안중근과 오랜 동지인 우덕순, 명사수인 조도선, 독립군 막내인 유동하, 독립군을 보살피는 마진주와 함께 거사를 준비하게 된다. 안중근의 거사를 도운 이가 한명 더 있는데 명성황후를 모시던 궁녀인 '설희'다.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게 잔인하게 시해되던 때 현장에 있던 설희는 복수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게 된다. 일본에서 게이샤가 되었고,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게 되어 황실에 들어가게 된다. 황실에 들어가 이토 히로부미의 상황 및 정보를 모스부호로 안중근 무리에 전달하게 된다. 독립군 정보원인 설희의 정보 덕에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달받고 안중근 및 독립군은 드디어 거사를 준비하게 된다. 설희 역시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자는 도중 비녀로 처단하려 했는데 아직 잠들지 않은 방어를 하며 조선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들킨 설희는 기차 골방에 갇히게 되면서 스스로 자결하게 된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이날만을 기다린 안중근은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정확히 명중한 안중근의 총,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성공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의 법정도 아닌 일본의 법정에 서게 되면서 사형이라는 부당한 선고를 받게 된다. 안중근의 어머니는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한 통 쓰게 되는데, 그 내용은 '나라를 위해 일했으니 나라를 위해 죽어라.' 어머니로서 하기 힘든 결정이지만 나라를 위해 한 일이니 받아들이라는 편지를 받고 안중근은 결심했다. 항소를 하지 않기로.. 마지막 항변에 누가 죄인인가를 외치며 영화가 끝나게 된다. 

     

     

    2. 역사적 배경

    안중근은 1979년 9월 2일 황해도에서 태어났으며 집에서 불리는 이름으로는 안응칠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자라온 안중근은 남달리 총명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다. 개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신학문인 프랑스어를 배웠다. 안중근의 집안은 독실한 종교인으로 19세기에 천주교에 입교해 프랑스 신부로부터 토마스(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6세의 어린 나이로 결혼을 해 두 아들과 한명의 딸이 있다. 안중근은 1907년 29세에 서북학회 및 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한일신협약을 통해 일제가 대한 제국의 국권을 빼앗자, 러시아로 건너가 의병투쟁을 결심하게 된다. 1908년 30세에는 여러 의병장들과 함께 러시아 국경을 넘어 국내 진입을 위한 국내 진공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하였다. 1909년 31세에는 일본의 탄압으로 의병 활동이 어렵게 되자, 김기룡, 엄인섭, 황영길 등 12명의 동지와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이토 히로부미 통감과 을사오적 이완용을 각각 암살하기로 하는 독립운동을 맹세하였다. 1909년 10월 19일에 이토 히로부미의 만주 시찰 소식을 듣게 된 후 안중근은 준비하였으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겨누어 이토는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안중근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총영사관에 인계되 뤼순감옥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1910년 2월 14일 32세에 사형을 선고받으며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안중근은 재판 당시 법정에서 한 말이 있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요, 또 일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요, 대한 제국 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이요.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니 만국 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또한 순국 전 안중근의 독립 의지가 돋보인 유언이 있다. 안중근은 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절대 시신을 국내로 옮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안중근은 감옥의 간수들과 사형 집행자들까지 감동할 정도로 당당하게 나라를 위한 죽음을 맞이했다.

     

     

    3. 총평

    대한민국이 현재 자유민주주의가 된 이유는 나라를 지켜준 선조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영화는 청소년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선택되어야 한다. 영화를 보며 역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고, 다시 한번 지금 내가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도입부에는 단지동맹의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가 한마음 한뜻을 이루어 결심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순국 전 장면인데, 감정이 이입되면서 내가 사형장에 있더라면 너무 두렵고 무서울텐데 .. 나라를 위해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에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하면서 여러 감정이 몰려왔던 것 같다. 정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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